4차산업혁명과 준비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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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휴머노이드 로봇 격투기 대회가 우리 미래의 삶에 의미하는 것

임정혁의 뉴노멀 2025. 5. 30. 11:36

링 위에서 펼쳐진 미래의 서막

2025년 5월 25일, 중국 항저우에 마련된 격투기 링 위에서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착용한 두 '전사'가 마주 보며 격투 자세를 취했지만, 이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신장 1.32m, 체중 35kg의 유니트리 G1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세계 최초의 기갑격투기대회(機甲格鬥擂台賽) 주인공이었다.

 

중국이 명명한 '기갑격투기대회(機甲格鬥擂台賽)'는 흥미로운 문화적 표현이다. 기갑(機甲)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메카니컬(Mechanical)"의 줄임말로 쓰이는 용어인 메카를 중국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로봇격투기대회가 되겠다. 구태여 일본 만화 용어를 쓴 것은 만화에서나 나오던 이야기가 이제는 현실이 됐다는 의미를 담고자함인 듯 하다.

 

경기가 시작되자 로봇들은 사람처럼 주먹을 휘두르고, 발차기를 날리며,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 다시 싸움을 이어갔다. 링 밖에서는 인간 조종사들이 조이스틱으로 로봇을 움직였지만, 격투 동작 자체는 전문 격투선수들로부터 학습한 AI 기술의 산물이었다. 둔탁한 타격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AI Strategist"라는 이름의 로봇이 최종 승리를 거두며 인류 역사상 첫 번째 휴머노이드 로봇 격투 챔피언이 되었다.

 

이 장면을 지켜본 전 세계 관객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어떤 이들은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에 감탄했고, 또 다른 이들은 로봇이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에 불안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대회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인류 문명의 새로운 전환점을 상징한다는 사실이다.

 

만화에서 현실로: 로봇 기술의 진화

휴머노이드 로봇의 격투 시연이 왜 중요한가? 이는 로봇 기술이 실험실을 벗어나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 환경에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저장대학교 저우디 교수의 분석처럼, "격투에서 로봇은 신속하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실시간으로 자세를 조정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예측·판단하기를 요구받는다"며 "이런 능력은 산업 로봇의 장애물 회피나 구조 로봇의 돌발 상황 대응 등 시나리오에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로봇이 격투를 통해 보여준 능력들—실시간 환경 인식, 동적 균형 유지, 빠른 의사결정, 자율 복구—은 모두 차세대 로봇이 갖춰야 할 핵심 역량들이다.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던 산업용 로봇에서 벗어나, 인간과 함께 살아가며 복잡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생활 동반자'로의 진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러한 기술 발전의 속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로봇이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문을 여는 모습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이제는 격투까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AI 기술과 결합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 속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새로운 전장

휴머노이드 로봇 격투 대회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바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새로운 상징이라는 점이다. 이번 대회를 주최한 중국은 로봇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며 미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하고 있다.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는 놀라운 수준이다. 1,380억 달러 규모의 국영 벤처캐피털 펀드를 로봇과 AI 등 첨단 기술에 투입했으며, 현재 세계 최대 산업용 로봇 시장(2023년 약 180만 대 운용)을 보유하고 있다. 유니트리 G1 로봇이 16,000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된 것도 중국의 뛰어난 공급망 최적화와 대량생산 능력의 결과다.

 

이에 대응해 미국 로보틱스 기업들은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테슬라, 보스턴 다이나믹스, 애질리티 로보틱스 등 주요 기업들이 미국 의회에 "국가 로보틱스 전략 없이는 미국이 로봇 경쟁에서뿐만 아니라 AI 경쟁에서도 패배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연방 차원의 지원을 요청하고 나섰다. 테슬라의 조나단 첸이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것은 전투의 절반에 불과하며, 누가 이를 확장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강조한 것처럼, 이제 기술 개발을 넘어 대량생산 역량이 글로벌 경쟁의 핵심이 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미중 경쟁은 공급망 재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중국의 희토류 자석 수출 제한으로 테슬라 옵티머스 로봇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밝힌 것처럼, 로봇 산업이 새로운 지정학적 갈등의 무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로봇, 공존의 새로운 패러다임

로봇 격투 대회가 던지는 또 다른 질문은 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로봇이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행동 중 하나인 '격투'를 모방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 성취를 넘어 철학적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는 로봇이 인간의 모든 영역에 진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미 제조업, 물류, 의료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로봇이 이제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는 로봇 올림픽이나 로봇 프로스포츠 리그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윤리적 우려도 제기된다. 로봇이 '폭력'을 학습하고 실행하는 모습이 과연 바람직한가? 물론 현재의 로봇 격투는 인간의 통제 하에 이뤄지고 실제 피해도 미미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악용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 발전이 인간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봇이 단순 노동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복잡한 작업까지 수행할 수 있게 되면, 인간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는 교육, 노동, 사회보장 등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과제다.

한국 로보틱스 산업, 기회와 도전

이러한 글로벌 로봇 혁명 속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떨까? 국제로봇연맹(IFR)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로봇 판매시장 규모에서 세계 4위, 로봇밀도에서는 세계 1위라는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제조업 현장에서의 로봇 활용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기술 경쟁력 면에서는 여전히 과제가 많다. 한국 로봇 산업의 종합 경쟁력은 세계 5위로, R&D, 생산, 애프터마켓서비스에서는 강세를 보이지만 조달과 수요 부문에서는 최하위를 기록했다. 현대로보틱스가 글로벌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6위(2% 점유율)를 차지하고 있지만, 상위 5위는 모두 일본과 유럽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보스턴 다이나믹스 인수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11억 달러를 투입해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기술을 확보했지만, 아직까지는 상업적 성과보다는 투자 비용이 더 큰 상황이다.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2024년 335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은 로봇 기술의 상용화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분명한 기회가 있다. 우선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인프라와 IT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로봇 생산과 시스템 통합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들의 로봇 시장 진출도 산업 생태계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한국이 강점을 가진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기술은 차세대 로봇의 핵심 부품이다. 협동로봇(코봇)과 서비스로봇 분야에서 중국과 차별화된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향한 선택

중국 항저우에서 펼쳐진 휴머노이드 로봇 격투 대회는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인류 문명의 새로운 장을 여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로봇이 실험실을 벗어나 현실 세계로 나와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기술 발전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인간의 존엄성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로봇과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때다.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변화의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욱 과감한 투자와 혁신이 필요하다. 부품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핵심 기술 역량을 확보하며, 해외 시장 진출을 통해 내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동시에 로봇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구축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격투 대결이 보여준 미래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이제 우리가 그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선택할 차례다. 로봇과 함께하는 새로운 세상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그 답은 오늘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