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과 준비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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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왜 로봇공학자들은 '지렁이 로봇'을 개발하려고 기를 쓰는 걸까?

준비된 미래 2023. 4. 17. 23:28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에서 보듯 가장 하찮은 미물로 여겨지는 지렁이. 그런데 수십년 동안 과학자들이 지렁이를 선생 삼아 땅 속에 굴을 파고 다니는 로봇을 개발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왜 과학자들은 로봇 지렁이를 만들려고 할까요?
 


모든 생물들은 저마다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렁이도 그렇습니다. 바로 땅굴을 파는 능력입니다. 게다가 몸도 자유자재로 구부릴 수 있죠.
 
스웨덴 농업과학대학교에서 토양관리를 연구하고 있는 엘사 아라졸라 바스퀘즈(Elsa Arrázola-Vásquez) 교수의 말을 빌면 지렁이는 몸을 매우 유연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운 곳도 잘 통과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만든 기계 중에는 지렁이 만큼 땅 속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죠.
 
이러한 지렁이의 주특기를 흉내 내서 로봇으로 만들려는 연구가 꾸준히 진행돼 오고 있습니다. 최근까지의 성과를 보면 지렁이의 몸에 있는 강모와 그 역할을 모방한 것이 가장 큰 혁신입니다. 그와 함께 긴 몸을 따라 줄줄이 붙어 있는 환절이라고 불리는 둥근고리형 마디가 피스톤처럼 움직여 이동하는 원리를 그대로 복사해 낸 것도 큰 성과입니다.
 
지렁이는 눈도 없고 귀도 없습니다. 그래서 보고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비좁은 흙 속에서 터널을 만들며 자유롭게 다닙니다. 그 비밀은 바로 지렁이 몸의 이와 같은 특수한 구조와 기능 덕분입니다.
 
지렁이는 환형동물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고리(환) 모양(형)을 한 여러 마디 즉 체절이 있기 때문이죠. 몸에는 다리나 돌출부위가 없는 매끈한 원통형입니다. 이런 지렁이가 흙 속에서 터널을 파면, 그 모습은 실린더 형태의 흙 터널에 피스톤 형태의 지렁이가 들어가 있는 모양새가 됩니다.
 
지렁이는 이 실린더를 잘 미끄러져 통과하기 위해 점액을 분비하여 몸을 미끌미끌하게 합니다. 마치 엔진 속 실린더에 상하 운동을 하는 피스톤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윤활유를 뿌려주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점액까지 분비된 미끄러운 몸으로 흙을 파내고 앞으로 전진을 하려면 몸을 흙에 단단히 고정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지렁이 몸에 촘촘히 나 있는 발톱 같은 털인 강모가 그 기능을 합니다. 지렁이 몸 속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면 그 힘이 들어간 부분이 부풀어 흙벽에 꽉 차게 되는데, 이 때 강모가 흙과의 마찰력을 극대화 시켜 몸을 흙벽에 고정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몸을 지지하고 지렁이는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지렁이의 독특한 움직임을 포착해 낸 것이 가장 최근의 연구 성과입니다.
 
이탈리아 공과대학교( Italian Institute of Technology, IIT)의 소프트 로보틱스 그룹 연구원들은 지렁이 모양을 본떠 옆으로 불룩하게 팽창했다 수축하며, 앞뒤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로봇을 개발했습니다.
 

옆으로 팽창-수축하는 운동과 앞으로 전진하는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지렁이 로봇

 
IIT의 기계 공학자인 리디 다스(Riddhi Das) 교수에 따르면 이 디자인은 정압(positive pressure)과 부압(negative pressure)을 사용하여 추진력을 발생시키는데, 지렁이 로봇의 길이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매우 참신한 아이디어입니다. 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지렁이 근육의 움직임을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면서 더 다양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이들이 만든 지렁이 로봇의 길이와 무게는 가벼운 아령 정도입니다. 로봇의 몸체에는 어떤 액체들 보다도 지렁이가 옆으로 팽창-수축하는 운동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몇몇 다른 로봇들만큼 평평한 표면에서 빠르지는 않지만, 토양 속을 더 깊이 이동할 수 있습니다.
 
땅굴을 파는 지렁이 로봇을 만든다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요. 미국 노트르담 대학의 전기 공학자인 야세민 오즈칸 아이딘(Yasemin Ozkan-Aydin) 교수는 이 사실을 특히나 잘 알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야세민 교수은 네 차례나 지렁이 로봇 설계에 참여해 왔고, 맡은 역할은 실제 지렁이를 관찰해서 디자인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IIT 그룹이 창안한 로봇은 로봇공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혁신을 이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지렁이 로봇 몸체에 만들어진 각 체절(마디)이 실제 지렁이와 똑 같이 옆으로 팽창-수축하는 운동을 할 뿐만아니라 앞으로 전진하는 운동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생물학자가 다 된 로봇공학자 바바라 모졸라이(Barbara Mazzolai) 교수는 이 지렁이 로봇 프로젝트가 깊은 생물학적 이해에 기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로봇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하는 일이 단순히 동물의 모양을 기계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물학적 원리는 로봇에게 유용한 기능을 제공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렁이 로봇의 경우 생물학적으로 영감을 받은 부분은 바로 지렁이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구조입니다.
 
다만 실제 지렁이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크기입니다. IIT 지렁이 로봇은 지름이 4cm, 길이가 45cm로 실제 지렁이보다 상당히 큽니다. 지렁이 로봇들은 보통 이동을 위해 펌프나 다른 이동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문에 내부 장기를 검사하기 위한 내시경 검사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로봇은 다른 상업적 목적을 위해 개발되는 다른 지렁이 로봇들보다는 크기가 작습니다. 예를 들면 GE가 만든 견고한 땅굴파기 로봇 같은 것들이죠.
 
GE 연구소의 기계 엔지니어인 디팍 트리베디(Deepak Trivedi) 씨에 따르면, GE가 개발하고 있는 지렁이 로봇은 스스로 추진하고, 매우 유연하며, 조종도 가능한 로봇입니다.
 

GE가 땅굴을 파는 지렁이 로봇을 시험하고 있다.

 
트리베디 씨 설명입니다.
 

“이 로봇들의 기본 구성 요소들을 살펴보면, 공기가 주입된 인공 근육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재질은 기본적으로 고무로 돼 있고, 그 둘레로 잘 짜여진 섬유망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연구팀은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전술 터널링 솔루션에 대한 요청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지렁이 로봇은 매우 은밀한 방법으로 땅굴을 팔 수 있습니다. Darpa 프로그램은 이제 종료되었지만, GE는 굴 파기 및 탐색에서 이 로봇의 활용 사례를 축적하기 위해 미 국방부와 계속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이 로봇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고객들을 찾고 있습니다. 지름이 약 10cm인 이 지렁이 로봇은 자체적으로 굴을 뚫을 수 있고, 이미 실제 토양에서도 테스트를 마친 상태입니다.
 
그러면 GE의 지렁이 로봇은 상업적으로 어디에 사용될까요?
 
GE 연구원들은 이 로봇이 지하 시설을 설치하는 데 있어 기존의 전통적인 시추 방법보다 친환경 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추 비용 또한 더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GE 연구소 연구원들은 이 로봇이 갖는 상업적 효용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로봇의 주요 활용 분야로 인터넷용 광섬유 선로, 전기 선로, 전기자동차 충전 인프라용 선로 시공 등을 꼽습니다. 그렇지만 GE는 이 로봇을 국방비로 개발했기 때문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거나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 제한적입니다.
 
그 외에도, 지렁이 로봇들은 광업용 채굴, 농업을 위한 탐지, 달과 같은 우주 행성에서의 발굴 같은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용도의 하나로 수색·구조를 들 수 있습니다. 자연 재해나 사고로 사람이 매몰된 경우 카메라가 부착된 작은 지렁이 로봇이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 매우 효과적으로 매몰된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용도로 현장에 투입될 때까지는 아직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렁이가 땅굴을 팔 때 통로를 미끈하게 하려고 분비하는 점액은 아주 오랜 기간 진화해온 생물학적 시스템이기 때문에 지렁이 로봇이 흉내 내기 매우 어렵습니다. 몸체에서 점액이 분비되지 않는 한 아무도 지렁이 로봇을 실제 지렁이로 착각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생물을 모방해서 기계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합니다. 미국 루이스 & 클라크 대학의 생물학자 켈러 오텀 교수는 “많은 인공 근육 기술이 '죽음의 R&D 계곡'을 넘지 못했다는 것에 실망했다”고 말합니다.
 
도마뱀붙이에서 힌트를 얻은 접착제를 연구하고 있는 오텀 교수는 인공 근육의 개발도 ‘10/10 혁신 법칙’을 따른다고 믿고 있습니다. ‘10/10 혁신 법칙’이란 연구개발에 10년이 걸리고, 시장에 나오는데 다시 10년이 걸린다는 법칙입니다.
 
만약 이 지렁이 로봇들이 10/10 혁신 법칙에 따라 10년 혹은 20년 후에 시장에 나온다면 우리 발밑에 땅굴을 파서 우리 사회의 필수 시설들을 설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