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되는 날은 언제일까?
챗GPT라는 대화형 인공지능이 지난해(2022) 말에 전격 출시된 후 세상은 온통 ‘AI 신드롬’이라고 해도 될 만큼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뉴스에서도, 온라인 포털에서도, 유튜브에서도 모두 인공지능이 초래할 우리 삶의 변화에 대해 이런저런 예측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인데요. 그만큼 챗GPT와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동종의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지며 영향력을 행사해 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우리의 생활 방편인 ‘일자리’와 관련한 ‘일의 미래’에 미칠 영향에 맞은 관심들이 쏠리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일상화됐을 때 유지될 직업과 사라질 직업, 그리고 새로 생겨날 직업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예측성 일자리 담론의 초점은 대부분 돈을 받는 유급 노동에 맞춰져 있습니다. 유급 노동이 중요하긴 하지만 무급 노동 역시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우리나라 통계청이 발표하는 통계 중에는 ‘생활시간조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민들의 생활양식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5년마다 실시하는 통계조사로, 하루 24시간 중 국민들이 어떠한 행동을, 어느 시간대에 하고 있고, 각 행동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 조사합니다. 이 조사의 목적은 각종 노동, 복지, 문화, 교통관련 정책 수립이나 학문적 연구의 기초 자료로 사용하기 위한 것인데요. 그 가운데서도 특히 무급 가사노동 시간을 분석하여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는 연구에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생활시간조사는 2019년에 있었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이 가사노동에 투입하는 시간은 평일 기준으로 성인 남자는 하루 48분, 성인 여자는 하루 3시간 28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수치는 주말에는 조금 달라지는데요. 남성은 1시간 17분이고, 여성은 평일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 통계에서 보듯이 가사 노동시간은 여성이 남성보다 4배 더 깁니다. 더구나 가정 내에서 남편이 외벌이를 하는 경우에는 가사노동을 아내가 거의 도맡아 하게 됩니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가져오게 될 미래의 변화상 중 일과 관련된 부분에서 거의 모두 유급 노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불만을 가진 일단의 연구자들이 인공지능 담론의 범위를 무급 가사노동으로 확대하고자 의미 있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일본 오차노미즈 여대와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진이 그 주인공들인데요. 이들은 요리, 식료품 쇼핑, 세탁, 돌봄 등 다양한 가사 노동이 향후 5년에서 10년 동안 얼마나 자동화될 것인지에 대해 일본과 영국의 65명의 AI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습니다. ‘인공지능은 언제쯤 우리를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 시켜 줄 수 있을까?’라는 주제와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구 사회를 대표하는 영국과 동양 사회를 대표하는 일본 두 나라를 선정한 것은 연구 참여자들의 출신 배경에 따른 문화의 차이를 고려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2월 그 결과를 「무급 가사노동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습니다. (*하단 원문 자료 링크 참조)
연구 결과, 두 국가를 평균해서 가사노동 전체에 대해 응답자의 약 40%가 향후 10년 내에 자동화될 수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두 국가 간에는 차이도 좀 있었는데요. 영국 전문가들보다 일본 전문가들이 가사 일의 자동화에 대해 더 비관적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차이는 아마도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에 차이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일본 남자들이 영국 남성들 보다 가사 일에 덜 참여하기 때문에 가사 일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이죠.
식료품 쇼핑의 경우에는 두 나라 모두에서 가장 자동화 가능한 가사노동으로 꼽혔으며, 응답자의 45%가 5년 내, 59%가 10년 내에 자동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식료품 이외의 품목 쇼핑은 응답자의 39%가 향후 5년 내에 자동화될 수 있다고 예측했고, 10년 후가 되면 50%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증가했습니다.
집안 청소와 설거지도 AI 전문가의 약 46%가 10년 안에 자동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가사노동이었습니다. 자동 요리는 전문가의 약 32%가 5년 안에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봤으며, 10년 후에는 가능하다고 응답한 수는 46%였습니다.
빨래는 AI 전문가의 약 43%가 10년 이내에 자동화가 가능할 것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다림질과 옷개기는 그보다 좀더 많은 44%가 그 기간 동안 자동화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AI 전문가들이 향후 10년 동안 가사노동 분야 중 자동화가 될 가능성이 가장 낮다고 본 일은 돌봄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노인과 어린이 돌봄 외에도 애완동물 케어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좀 주목을 받은 부분은 자녀 공부 봐주기였는데요. 거의 40%가 10년 이내에 자동화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노인 돌봄은 향후 5년 동안 약 24%가 자동화 될 수 있다고 봤고, 10년 동안에는 35% 정도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애완동물 케어의 경우는 약 21%가 5년 내에 자동화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 수치는 10년 후가 되면 약 32%로 증가했습니다.
집 안팎에서 아이와 놀아주는 등 신체적인 육아를 하는 것이 10년 내에 자동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IT 전문가는 25%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자녀 돌봄이 상호 교감이 필요한 일이라서 기계에 맡기기는 어려운 부분이라는 점을 반영합니다. 아무리 자동화된 보육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자녀의 발달, 프라이버시 보호 등의 문제는 기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장벽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 영역의 자동화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고, 서비스를 받게 되는 자녀들 역시 기계에 의한 돌봄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구원들은 AI 전문가들에게 대상이 되는 가사일을 자동화하는 것이 가능한지 기술적 측면만 생각해 답변하라고 지침을 줬지만, 많은 응답자들이 돌봄과 같은 가사일에 대해서는 기술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인간적·사회적 요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AI 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이렇게 썼습니다.
“응답 지침에는 가사 일을 자동으로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지만 생각하고 사람들이 그런 로봇을 원할 런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말라고 했지만, 자동화 상품을 시장에 내놓으려면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이어야 할 뿐만아니라 사용자들이 그 상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연구는 그동안 ‘인공지능과 일의 미래’라는 중요 담론에서 거의 배제되다시피 했던 가사노동을 포함시켰다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 통계에서도 나타났듯이 가사노동은 주로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반복적인 일을 계속해야 하므로 노동 강도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가정 내부에서의 사적 노동으로만 간주돼 가치 있는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모든 가사노동을 자동화하지는 못하겠지만 상당 부분은 자동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AI 전문가들도 이야기한 것처럼 가사노동 가운데 어떤 일들은 인간의 감각과 판단력, 상호작용 등이 필요하므로 자동화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의 일들, 예컨대, 로봇 진공 청소기, 스마트 홈 시스템, 자동화된 세탁기와 같은 기술은 이미 상용화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가사노동이 자동화될 것입니다.
가사노동에 매여 있는 많은 여성들이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면 그들의 삶은 크게 변화할 수 있습니다. 직장, 교육, 예술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며, 가정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어 가족과 함께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사회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면, 성별에 따른 직업 선택, 급여 격차 등에 대한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가사 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지만, 삶에 상당한 변화가 올 만큼 해방될 수는 있을 텐데요. 그 시기에 대해서는 AI 전문가들 중 40% 정도가 10년 내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100%)가 예측하는 가사노동의 해방 시기는 과연 언제쯤일까요?
*원문 자료 출처 : https://journals.plos.org/plosone/article/file?id=10.1371/journal.pone.0281282&type=prin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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