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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의 불이 된 2050 탄소중립과 소형 원전 SMR 각축전, 그리고 대한민국

준비된 미래 2023. 5. 2. 19:42

발등의 불이 된 2050 탄소중립과 소형 모듈형 원자로 SMR 각축전, 그리고 대한민국

 

탄소중립, 불똥이 되어 인류의 발등에 떨어지다

 
세계는 지금 탄소중립을 향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은 개인, 회사, 단체 등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해서 실질적인 배출량을 0(Zero)으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즉,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량을 같게 해서 탄소 '순배출이 0'이 되게 하는 것으로, '넷-제로(Net-Zero)'라고도 부릅니다. 2019년에 ‘기후목표 상향동맹’에 121개국이 참여하면서 2050 탄소중립이 글로벌 신패러다임으로 대두된 것이죠.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탄소중립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하면 풀어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우리가 숨 쉬는 것부터 먹는 것, 입는 것,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 다양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며 일상을 즐기는 것 등 모든 것이 탄소배출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탄소 배출 없이 생활하라고 한다면 그건 그냥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만큼 현대문명을 누리며 사는 우리가 탄소를 감축해 넷-제로를 달성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산업혁명 이래로 화석연료를 태워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며 동력을 얻는 지금까지의 산업 형태를 송두리째 바꿔야합니다. 이 말은 탄소 배출 없이 친환경 에너지원을 활용해서 동력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데요. 태양열, 풍력, 조력, 바이오에너지 등이 그 대안으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에너지원만으로는 한정된 시간 안에 기후변화를 억제할 만큼 기존의 산업을 친환경 산업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지구 생태계와 인류에 회복 불능의 재앙을 불러일으킬 시한폭탄은 종국을 향해 쉼 없이 째깍입니다. 이대로라면 결말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여기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원자력 발전입니다. 지난해 유럽연합(EU) 의회는 원자력발전을 ‘그린 택소노미(Taxonomy)’에 포함하는 방안을 결의했습니다. 택소노미는 온실가스 저감과 탄소중립 실현에 필요한 경제활동을 분류한 목록입니다. 원자력이 택소노미에 포함됐다는 것은 ‘친환경 그린 에너지’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전 세계 기후위기 해결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도 원자력을 탈탄소 전기를 생산하는 핵심적인 에너지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원자력발전 시장을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노후화된 원자력발전소의 수명 연장, 폐쇄된 발전소 재가동, 핵융합 개발 민간 기업 지원 확대 등 원전 산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사실 원자력 발전은 방사능 유출 사고, 핵폐기물 문제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몇 가지 문제만 해결될 수 있다면 인류가 이때껏 발견한 것 중 원자력 만한 탈탄소 에너지원은 달리 없습니다. 원자력은 핵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연료 연소에서 발생하는 배기가스에 탄소가 있을 수 없으니 사실상 탄소 배출이 제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태양광이나 풍력보다 기후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서 가성비가 월등합니다. 이 분야 용어로 ‘에너지 밀도’가 매우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탄소중립을 추진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전력 공급의 불안정성과 전기 가격 상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해결사인 셈입니다.
 
결국 해답은 ‘안전한’ 원전이 될텐데요. 그래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 바로 ‘SMR(Small Modular Reactor)’ 즉, ‘소형 모듈형 원자로’라는 신기술입니다.
 

SMR, 탄소중립 성공을 위한 유일 대안으로 부각되다

 
소형 모듈형 원자로라는 명칭 그대로 전기 출력이 300㎿(메가와트)급 이하인 소형 원전을 의미합니다. 출력이 1000~1500㎿급에 달하는 기존 대형 원전의 3분의 1에서 5분의 1 이하 규모입니다. 국제원자력기구 IAEA는 300㎿급 이하를 소형원자로, 700㎿급 이하를 중형원자로로 분류합니다.
 
애초에 SMR은 송전망이 충분하지 않거나 외딴 지역에 소규모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됐습니다. 크기를 작게 하기 위해 대형 원전의 핵심 기기인 원자로,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을 하나의 용기에 넣은 원자로 모듈 형태로 일체화했습니다.
 

 
SMR은 원자로 하나에 저장된 핵연료 양이 적어 사고가 나도 방사성 물질에 의한 피해 반경이 넓지 않습니다. 또한, 원자로가 작아 출력이 낮으므로 원자로 냉각에 피동냉각계통을 채택하기 용이합니다. 피동냉각은 별도의 전원 없이 중력 같은 자연의 힘만으로 원전 내부를 냉각할 수 있는 안전 시스템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후쿠시마 사고와 같이 원자로를 냉각시킬 방법이 없어서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사고를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것이죠.
 
또 대부분의 SMR 구성품을 공장에서 제작·조립한 뒤 현장에서 설치만 하면 되기 때문에 제작 기간이 매우 짧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서 전 세계적으로 70여 종의 SMR이 개발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함께 혁신형 SMR을 개발 중에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기존의 원자력 산업이 국가 주도형 산업이자 대기업 위주였다면, 최근 개발되는 많은 수의 SMR은 민간 주도의 벤처 투자로 출발하여 사업화까지 이어져,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전통적인 핵 에너지 이용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점입니다.
 
SMR의 장점을 모두 구현할 수 있다면, SMR은 탄소 기반의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에너지원 중에 수백 MW를 생산하며 가스 터빈과 같이 유연 운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 됩니다. SMR은 ESS(배터리와 같은 에너지 저장 장치)나 수소 생산 기술과 결합하여 발전의 유연성을 더 높일 수 있으며, 전력 생산뿐 아니라 산업 단지에서 필요한 고온 열을 공급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장점을 활용하면, 소규모 지역에서 전력 자급자족할 수 있는 스마트 그리드(전력망) 시스템인 ‘마이크로 그리드’나 소규모의 독립된 그리드에서도 SMR을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전통적으로 핵 에너지를 이용할 수 없던 산업 영역이나 지역에서도 핵 에너지 이용이 가능해집니다.
 

급성장하는 SMR 시장, 원자력 선진국들의 각축장 되다

 
이러니 탄소중립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어떻게 끌 것이지 고심하고 있는 세계가 SMR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2030년대 전후 폐쇄될 석탄발전소가 SMR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향후 SMR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에 원자력 선진국들의 SMR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가장 빨리 뉴스케일(NuScale)이라는 SMR의 개발에 성공하여 사업화 중이고, 영국, 캐나다, 러시아 등 원자력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미국형 SMR, 뉴스케일(NuScale)

 
우리나라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개최된 제9차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혁신형 SMR의 개발을 공식화하고, 2021년 한수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중심이 되어 기본설계를 시작했습니다. 2022년 6월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으로 신청한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가 통과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올해 1분기에 설립될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단’을 중심으로 향후 6년간 약 4,000억 원을 투입하여 2028년까지 핵심기술 개발 및 검증, 표준설계를 수행하게 됩니다.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주관하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혁신형 SMR 국회포럼이 2021년부터 시작돼 올해까지 4차례 개최됐습니다. 특히 지난 4월에 열린 제4차 포럼은 ‘혁신형 SMR의 성공적 개발 및 사업화 추진방안’을 주제로 진행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하는 혁신형 SMR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는 동시에 적기에 개발이 완료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기술개발 외에도 SMR 산업생태계 구축, 법과 제도의 개선, 수출·사업화 기반조성도 병행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한미 양국, SMR로 에너지 동맹 강화한다

 
지난 4월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미 양국 기업과 기관들은 양국 간 ‘에너지 동맹’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SMR 시장은 2040년까지 연평균 22%씩 성장’한다고 전망하고 있듯이 한미 양국은 성장세가 예상되는 SMR 시장을 협력 강화 사업 중 하나로 꼽은 것입니다.
 
4월 2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첨단산업·청정 에너지 파트너십 행사'에서 한국과 미국 기업이 SMR 분야에서 3건의 업무협약을 맺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SMR 사업 확대 의지를 표명하며 한국수출입은행,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MOU를 체결했습니다. 뉴스케일파워는 글로벌 SMR 상용화를 선도하는 기업입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도 최초로 획득했습니다. 앞으로 이 세 기업은 기술 개발, 금융, 제작 등 분야에서 협력하게 됩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SMR 제작 기술 개발을, 수출입은행은 금융 지원을, 뉴스케일파워는 설계를 담당하는 것이죠.
 
SK이노베이션도 SK㈜, 한국수력원자력, 미국 테라파워와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 및 사업화를 위한 상호 협력 계약'을 체결하고 SMR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설 준비를 마쳤습니다. 테라파워는 빌 게이츠가 세운 미국 SMR 기업입니다. 원자로 모듈 설계를 전문으로 합니다. 이 협약은 한국수력원자력이 4세대 SMR 기업과 하는 첫 협력으로, 국내 원전 업계가 글로벌 SMR 공급망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4세대 원전은 이전 세대 원전보다 안전성을 높인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현대건설도 미국 홀텍 인터내셔널과 SMR을 활용한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 재건에 나섭니다. 우크라이나 원자력공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2029년 3월까지 우크라이나에 SMR-160 파일럿을 설치합니다. SMR 20기 가동을 위한 계획 수립과 원전에 필요한 부품 생산 방안도 모색합니다.
 

현대건설과 제휴한 미국 홀텍 인터네셔널의 SMR 모델, SMR-160

 

초격자 SMR 기술, 대한민국이 던져야 할 승부수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이 계속되면서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을 자랑하던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가 붕괴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그 사이 한국보다 원자력 기술 수준이 낮았던 중국, 러시아, 인도 같은 국가들이 놀라울 만큼의 기술 진보를 이뤘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의 기술 수준은 미국·인도·러시아·중국 다음의 세계 5위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원전 산업은 핵심 탈탄소 발전원으로 떠오르는 SMR을 기반으로 회복에 나서고 있습니다. 원전 선진국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SMR 시장에서 승부는 경제성으로 판가름 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원자력 강국으로서의 과거의 저력을 뜀틀 삼아 한국의 모델인 혁신형 SMR 기술로 에너지 안보, 탄소중립, 수출 증대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초격차 원자력 강국’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윤정일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지난 2월에 열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이슈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격차기술은 남이 넘볼 수 없는 절대적인 기술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원전 산업은 반세기 동안 세계 최고 원자력 공급망을 튼튼하게 갖췄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은 과거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준비되어 있는지, 최고 수준 유지할 수 있는지 항상 고민해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잠재울 수 있는 기술 산업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