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제레미 리프킨은 ‘수소경제’라는 책을 통해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수소는 어느 곳에나 있다. 적절하게만 사용되면 고갈되지도 않는다. 수소는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에게 영원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공평하게. 그래서 우리는 수소에너지를 인류 역사상 최초로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민주주의적 에너지 체제로 만들 수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이 책을 통해, “영원한 연료”인 수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에너지 산업을 재생에너지 인프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연료로서의 수소가 갖는 매력은, 지구 어디에나 있고, 열량이 매우 높으며, 연소해도 공해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수소는 물, 화석, 생명체를 포함하여, 지구상의 거의 모든 것에 들어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수소를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우리가 보고 만지는 모든 것에 들어 있는 셈이죠. 또 열량이 높아, 로켓 연료와 같은 응용 분야에서 강력한 에너지로 활용됩니다. 게다가 동력을 얻기 위해 연소될 때, 타면서 발생하는 가스나 찌꺼기는, 오염물질이 아닌, 청정한 수증기 즉 물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이자, 지속가능한 신재생 에너지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수소와, 에너지 산업, 그리고 수소가 지니고 있는 에너지 전환 초석으로서의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최근 수소에 대해 좀 과대 포장된 듯한 이야기가 왜 그렇게 많은지 궁금해 하시는 독자님들도 있텐데요. 수소가 어떻게 사용되고, 기후 위기 대처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시길 권합니다.
먼저 수소가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적정 규모로 운영되는 청정 수소 및 수소 기반 연료는, 재생 에너지, 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 솔루션과 같은 기술과 함께,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의 탈탄소 노력에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 표는 국제재생에너지기구 IRENA가 발표한 자료인데, 전세계 수소 수요를 보여주는 차트입니다. G7 회원국들의 2020년 수소 수요량과, 2050년 예상 수요량을 비교하고 있는데, 보시는 것처럼, 2050년까지 4~7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제에너지기구 IEA에 따르면, 2050년까지 이렇게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일환으로 활용되는, 수소 및 수소 기반 연료 덕분에,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대 600억톤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는 총 누적 배출 감소량의 6%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수소가 갖는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다른 신재생에너지들을 완벽하게 보완해주는 친환경 에너지라는 것입니다. 풍력, 태양열, 기타 신재생에너지는 전세계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에너지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 에너지원 만으로는 전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문형 발전이 필요한 경우나, 트럭과 같은 대형 운송수단, 수소가 꼭 필요한 산업 분야 등입니다. 이런 분야는 수소가 아니면 일반 화석연료를 사용해야 하므로 탄소배출 저감에 문제가 됩니다.
오늘날 수소의 대부분은 정유와 화학 산업에 사용됩니다. 산업용 수소 수요는 1975년 이후 3배로 증가했으며, 에너지 전환 연료로서의 잠재력으로 볼 때,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를 들면, 포스코그룹은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과 포스코에너지의 발전 사업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수소 수요가 발생하는 기업입니다. 2050년이 되면 포스코가 생산하는 수소 700만 톤 중 포스코그룹의 내부 수요는 5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이중 수소환원제철용은 370만 톤, 수소발전용은 130만 톤으로 전망됩니다. 이 수치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2021년 세계 총 수소 수요량은 9,400만톤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수소는 해운, 철도, 트럭, 버스와 같이 전기 사용이 어려운 대형운송·교통 부문의 탈탄소화에 도움이 됩니다. 독일에서는 지난해 처음으로 수소 연료로 구동되는 기차가 운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또 국제해사기구 IMO가 선박 소유주와 운영자에게 부과하는 탄소배출 규제가 점점 더 엄격해 짐에 따라 해운업 부문에서 청정 수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재 선박에 수소나 수소 기반 연료를 이용하는 시범 사업이 100개 이상 시행되고 있습니다.
일부 중공업 부문에서도 수소 활용을 위한 녹색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철강산업은 공업 부문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산업으로, 철강산업의 탈탄소가 주요 산업 국가들의 탄소중립 달성의 열쇠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철강산업은 2018년 기준으로, 약 1억100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는데, 이는 산업 부문 배출량의 39%,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3.1%에 해당합니다. 특히 포스코 66.8%와 현대제철 25%의 탄소 배출량은, 철강 부문 전체 배출량의 92%를 차지할 정도로 많습니다.
제철 과정에서 탄소가 많이 배출되는 것은, 고로를 이용한 생산방식과 관련이 깊습니다. 이 방식은 고로에 석탄을 넣고 태워, 1,500도 이상의 고온을 만들어 철광석을 녹인 뒤, 철만 뽑아내는 방식입니다. 고로 방식의 생산과정에서는 일산화탄소가 발생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시키는 환원반응이 일어나는데, 이때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것이죠.
그래서 환경단체들은, 철강을 생산할 때 탄소를 많이 발생시키는 고로 방식을 퇴출시키고, 대신 수소환원제철이나 전기로 같은 방식을 확대할 것을 제안해 왔습니다. 수소환원제철은 석탄이 아닌 수소를 환원제로 이용해 철을 제조하는 방식으로, 석탄을 사용할 때보다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듭니다.
스웨덴에서 에너지 공급업체인 SSAB와 철광석 생산업체인 LKAB가 합작 설립한 하이브릿(Hybrit)이 새로운 공정을 시범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화석 연료로 만든 코크스를 사용해서 철광석 펠릿에서 산소를 추출하고, 스폰지 철이라고 불리는 다공성 철 펠릿을 남기는 방식이었는데요.
하이브릿이 시험하는 새로운 방법은 수소 가스를 이용해 산소를 추출합니다. 수소 가스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물을 전기 분해하여 얻습니다. 그런 다음 스폰지 철은 전기 아크 가마로 들어가 최종적으로 강철로 만들어집니다. 이 방식의 제철 공정에서는 오염물질이 없는 수증기만 방출됩니다.
이 회사의 탈탄소 책임자 미카엘 노드랜더는 "이 기술은 익히 알려지긴 했지만 지금까지 연구실에서만 이뤄졌다"며, “이 시범 사업은 실제로 산업현장에서 상용화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8월, 하이브릿은 첫 번째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자동차 제조업체 볼보에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은 강철을 처음으로 납품한 것인데요. 볼보는 차량 시제품에 이 강철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성과를 기반으로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상용화된 생산 공장도 계획해 두고 있습니다.
2020년과 2021년 사이에 전 세계 수소 수요가 5% 증가한 것은, 여러 지역에서 기존 응용 분야와 신규 응용 분야가 모두 전반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청정 수소는, 유럽 26개국의 국가 수소 정책에서 보듯, 다양한 국가의 고유한 요구들을 지원하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전기 사용이 어려운 부문에 대한 탈탄소화 능력, 에너지 안보 제공 능력, 지역 간 재생에너지 분배 능력 등, 수소의 유연성 덕분에, 여러 지역에서 탄소중립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680여개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예를 들어, 유럽은 전세계 수소 투자의 30%를 담당하고 있으며, 북미 지역은 전 세계 저탄소 수소 생산의 80%를 맡고 있습니다. 또 한국과 일본은 전 세계 연료 전지의 50%를 생산하면서 공급망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산업용 수소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무색의 기체이지만, 종류를 구별하기 위해 서로 다른 색상으로 표시합니다. 생산 방식에 따라 연소 시 배출 가스도 달라지는데요. 그래서 각각의 색상은 서로 다른 생산 방식을 나타낸다고 보시면 됩니다.
회색 즉, 그레이 수소는,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를 개질하기 위해, 고온의 수증기를 촉매로 화학반응 시킴으로써 생성되는 수소로,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1kg의 수소를 생산하는 데 약 10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이 수소 추출 방법은, 다른 종류의 화석연료를 연소시켜 생성하는, 블랙 혹은 브라운 수소 보다는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합니다.
청색 즉, 블루 수소는, 그레이 수소와 생산 방식은 동일하지만, 생산 과정 중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방출하지 않고, 포집 및 저장 기술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따로 저장합니다. 그레이 수소보다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어 친환경성이 높고,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 또한, 높은 성숙도와 경쟁력이 확보돼,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만, 이산화탄소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 포획된 이산화탄소를, 지하에 영구적으로 저장해야만 ‘청정 수소’라는 라벨을 붙일 수 있다는 점이 한계입니다.
녹색 즉, 그린 수소는, 물의 전기분해를 통해 얻어지는 수소로, 태양광 또는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얻은 전기에너지를 물에 가해, 수소와 산소를 생산합니다. 따라서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혀 없어, ‘궁극적인 친환경 수소’라고 불립니다.
인류가 추구하는 미래의 청정에너지원은, 바로 이 그린수소인데요. 각국은 그린수소 생산과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블루수소, 그린수소 인증 기준을 마련하는 한편, 2016년부터 수소의 친환경성을 인증하는 ‘수소 원산지 보증제도’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청정수소 생산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청정수소 인증제도가 2024년부터 시행됩니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수소의 대부분은 화석 연료를 사용하여 생성되는데요. IEA는 2021년에 천연가스가 전체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했으며, 석탄이 약 20%를 차지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녹색 수소는 현재 전체 수소 생산량의 약 0.1%에 불과하지만, 신재생에너지와 전기분해 비용이 계속 하락함에 따라 비중은 점차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IEA 보고서에 따르면, 수소 수요는 앞에 말씀 드린대로 2021년에 9,400만 톤에 도달했는데, 이는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의 총 9,100만톤에서 조금 증가한 수치로,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약 2.5%를 차지합니다.
수소 생산 증가는 대부분 청정하지 않은 원료에서 나온 것이지만, 저탄소 수소 프로젝트가 급증할 예정이어서, 점차 청정 수소 생산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여파로, 각국 정부는 미래에 깨끗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천연 가스 및 LNG 인프라에 투자하면서,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을 추구해 가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 모두 진행된다면 2030년에는 저탄소 수소 생산량이 연간 1,600~2,400만톤에 이르게 되는데, 이 가운데 청색 수소는 700만톤~1,000만톤, 전기분해를 통해 생산되는 녹색 수소는 900~1,400만톤입니다.
그런데 IEA가 펴낸 ‘글로벌 수소 보고서 2022’에 따르면 수소연료에 관한 3가지 불확실성, 즉 불투명한 미래의 수소 수요, 일관성 없는 규제 프레임워크, 수소 운송 인프라 부족으로 신규 프로젝트 중 4%만이 진행 중이거나 최종 투자 결정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2022년에는 전기분해에 제공되는 전기량은 2배 증가하여 8기가와트에 달했습니다. 지금까지 산업계가 발표한 신규 전기분해 프로젝트가 모두 현실화되면, 2030년까지 연간 60기가와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정된 전기분해 수소 생산 규모의 증가와 함께 이루어진다면, 2030년 전기분해 비용은 2022년과 비교해 70%까지 하락하게 됩니다. 이 추세는 풍력 및 태양열 발전 분야에서 나타난 급격한 시설 비용 하락과 유사한데요. 이렇게 비용이 하락하면 그만큼 점유율은 높아지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청정 수소 연료 생산과 사용을 통한 탄소 저감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청정 수소 생산은 2050년까지 IEA가 목표하고 있는 탄소중립 수준에 도달할 만큼 성장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는 것이죠.
세계 선진 국가들 모두, 청정 수소 공급을 확대하고, 경제적인 가격의 저탄소 수소 수요를 창출할 수 있도록, 더 많은 투자와 인센티브를 유인하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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